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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주의 화가, 클로드 모네의 생애와 그림

by blueand 2023. 3. 27.

인상주의자라는 이름은 모네가 1874년 4월 25일, 클로드 모네가 이끄는 " 화가 조각가 판화가 예술가 협회전 "이라는 전시회가 열렸는데, 이 전시는 악평이 쏟아졌지만 전시회를 통해서 자신들을 알리기에는 충분했다. 이 전시회에 참여한 이들을 인상주의자,라고 불렀으며 모네의 그림 「인상, 해돋이」에서 비롯되었다. 

 

인상해돋이
출처:갤러리북시리즈, 클로드모네

 

목차

1. 인상주의 화가, 클로드 모네의 생애

2. 클로드 모네의 그림, 까치

3. 아르장퇴유의 양귀비 들판

 

1. 인상주의 화가, 클로드 모네의 생애 

 

클로드 모네는 "인상주의"의 창시자인 유명한 프랑스의 화가이며 1840년 11월 14일 프랑스에서 태어났으며, 1926년 12월 5일 그의 나이 86세 생을 마감하였다. 보는 것마다 그림으로 그리는 것을 좋아했던 모네는 프랑스 북부에 있는 해안 도시 르아브르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다. 1859년에 모네는 고등학교 시험 전에 학교를 그만두고 파리로 떠난다.

 

모네의 아버지는 모네가 그림 그리는 것을 못마땅해했으며 모네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그를 아끼던 고모가 모네의 학비를 지원해 줬다. 고모가 지원해 주는 돈으로 2년 정도 공부를 하던 그는 징집이 되는 바람에 알제리에 갔다가 1년 만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다. 다시 고향을 돌아온 그를 아버지는 여전히 그의 그림 인생을 못마땅해했으며, 지원해 주던 고모마저도 모네에게 등을 돌려 모네는 다시 파리로 돌아가야 했다.

 

클로드모네
출처:갤러리북시리즈, 클로드 모네

 

파리로 돌아간 모네는 1865년 바다를 주제로 그린 작품 2점이 처음으로 살롱전에 입선하며, 다음 해에는 자신의 연인인 카미유를 모델로 그린 " 초록 드레스의 여인 "으로 다시 살롱전에 입선했고 그는 그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모네의 아버지는 가난한 집안의 딸인 카미유와의 교재를 허락하지 않았고 생활비마저 끊어버린다. 하지만 모네는 1870년 6월에 카미유와 결혼식을 올린다. 그들 사이에는 세 살인 아들 장이 있었다.

 

행복한 세 사람에게 다시 불행이 찾아온다. 프랑스의 프로이센 전쟁이 시작되었고 모네는 징집을 피해서 아들과 아내를 데리고 영국으로 간다. 거기서 훗날 모네에게 가장 큰 명성을 안겨다 줬던 뒤랑 뤼엘을 만난다. 1871년 후반에 파리에서 8km 떨어진 거리에 있는 센 강가 근처에 아르장퇴유에 집을 얻었는데 들판과 물이 어우러지는 그곳에서 그린 그의 그림은 인정을 받기 시작한다. 모네는 씀씀이가 컸고, 그 와중에 모네의 아내 카미유의 건강은 나빠졌고 둘째까지 임신하였다. 

 

모네는 베퇴유로 또 한 번 가족들을 데리고 이사를 한다. 하지만 식구들이 더 늘었다. 모네의 후원자인 에르네스트 오슈데가의 파산으로 에르네스트는 도주했고 에르네스트의 아내 알리스와 에르네스트의 여섯 명의 아이들도 함께 하게 된 것이다. 알리스는 모네의 아내 카미유를 보살폈고 카미유를 대신해서 아이들을 돌보았다. 그러던 중 1879년 카미유의 아내는 어린  두 아들을 남기고 서른두 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이때 모네는 자신의 삶에서 한동안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마음도 생활도 모든 것이 힘들어진 모네는 베퇴유를 떠나 베퇴유보다 집값이 싼 푸아시로 이사를 한다. 이때 도주했던 에르네스트가 돌아와 자신의 아내 알리스에게 다시 같이 살기를 권했지만 알리스는 모네에 곁에 머물기로 한다. 에르네스트가 사망하자 알리스는 모네와 정식으로 결혼을 한다. 이때가 푸아시를 떠나 센 강의 앱트 강가의 마을인 지베르니에서의 일이다. 지베르니에서 모네는 행운이 따랐다. 적극적으로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을 미국에 소개해준 뒤랑 뤼엘에 의해서 모네는 돈 많은 미국인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게다가 " 건초더미 연작 "의 완판 성공으로 모네의 삶은 바뀌기 시작했다. 

 

빛도 사랑했고 물도 사랑한 모네는 강으로 바다로 떠돌아다녔으며 강이 흐르는 지베르니의 땅을 사기 시작했다. 집 안에 연못을 만들었고 그 수면 위로 떠오르는 빛을 그림으로 그려 표현하였다. 모네가 살았던 지베르니는 유명해졌고 모네처럼 성공하기를 꿈꾸는 화가들은 지베르니로 몰려오기 시작했다. 1911년 자신의 두 번째 아내가 되었던 알리스가 세상을 떠났고, 그쯤 모네의 눈은 나빠져 거의 실명 상태까지 안 좋아지다 좋아지길 반복했으며 1914년에는 그의 아들 장마저 세상을 떠난다.

 

모네는 슬픔과 상실에 빠져 살았다. 1921년 클레망소는 오랑주리를 모네의 그림을 소장할 목적인 미술관으로 결정했고 1925년 미술은 완공하였지만, 나빠진 시력 탓에 모네의 그림은 느리게 진행되었다고 한다. 모네는 1926년 12월 5일 사망했다. 그가 사망한 뒤 1927년에 오랑주리 미술관은 개막을 했고 모네가 남긴 미완성의 작품들을 세상에 공개하였다. 

 

2. 클로드 모네의 그림, 까치 

 

출처:갤러리북시리즈, 클로드 모네

까치 : 1868~1869, 캔버스에 유화, 130×89㎝, 프랑스 파리, 오르세 미술관

우리가 생각하기엔 눈은 흰색이다. 하지만 하얀 눈 위에 어떤 것의 흔적이 드리워짐에 따라서 색은 달라져 보이는데, 그림 속 흰 눈 위로 옅은 분홍색, 보라색, 푸른색의 빛깔들이 그러하다. 그러나 모네가 준비한 작품 까치는 1869년 살롱전에서 낙선되고 만다. 그 당시 심사위원들은 모네의 그림인 까치 그림은 붓이 지나간 자리가 노골적으로 드러난다고 했고, 꼼꼼하게 세부를 한 노력도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모네의 까치, 하얀 새해 첫날 시골에서 날은 춥지만 무언가 포근한 느낌이 드는 것 같은 그림이다. 

 

3. 아르장퇴유의 양귀비 들판

 

아르장퇴유의양귀비들판
출처:갤러리북시리즈, 클로드 모네

 

아르장퇴유의 양귀비 들판 : 1873년 캔버스에 유화, 65×50㎝ 프랑스 파리, 오르세 미술관

클로드 모네의 그림은 자연이 주인공이 되고, 사람은 배경이 된다. 그림 속 여인은 모네의 아내 카미유이고 꼬마는 모네의 아들 장의 모습이다. 모네의 그림 속 인물들은 풍경 속으로 녹아들며 그 풍경을 더 따뜻하게 하거나 쓸쓸하게 만든다. 

 

이 그림을 보고 어느 따뜻한 날에 들판을 거니는 모습이 평화로워 보이기도 했지만, 뭔가 슬프기도 했다. 모네는 어떤 생각을 하면서 풍경을 그리고 아내 카미유와 아들 장을 그렸을까. 

 

 

03 갤러리북시리즈, 클로드 모네(글, 김영숙)를 참고하여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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